주요 내각 인선을 마무리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제47대 대통령 당선인이 ‘관세 폭탄’ 포문을 열고 캐나다·멕시코·중국에 투하를 예고했다. 동맹도 필요 없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앞에 세계 경제는 격랑에 휩싸일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관세 무기화’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이어서 국제무역질서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1월 25일(현지 시각)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마약 밀반입과 불법 이민자 유입을 이유로 대통령취임일인 내년 1월 20일 첫 행정명령으로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하고, 미국으로 수입되는 중국산 제품에는 기존 관세에 10%의 세율을 추가로 매기겠다고 엄포를 놨다. 올해 9월까지 이 세 나라가 미국 전체 수입의 42%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의 1~3위 교역 상대국인 멕시코와 캐나다, 중국에 대한 ‘관세 폭탄’을 공식화하면서, 미국발(發) 관세 폭풍이 세계 무역과 경제에 미칠 파급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멕시코·캐나다와 공급망이 조밀하게 얽혀 있는 만큼 부작용 최소화에 총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이날 ‘관세 폭탄’ 발표의 이유로 든 마약 밀반입과 불법 이민자 유입에 대한 직접적인 계기는 중남미계 불법 이민자들이 국경 통제가 강화되기 전에 미국에 입국하려는 현상이 벌써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멕시코와 캐나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면서 범죄와 마약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유입되고 있다”라면서 이른바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문제를 거론하고 “이 관세는 특히 펜타닐 등 마약과 불법 외국인들의 미국 침략이 멈출 때까지 유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세를 마약과 불법 이민자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속내인 것이다.
당선인은 중국에 대해서도 “그동안 엄청난 양의 마약, 특히 펜타닐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과 관련해 중국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소용이 없었다”라고 말하며, “중국 측은 적발된 마약상에 대해 가장 강력한 처벌인 사형을 선고하겠다고 밝혔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마약은 주로 멕시코를 통해서 전례 없는 수준으로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라며 “이런 행위가 중단될 때까지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대해 어떤 추가 관세에 더해 10%의 관세를 더 부과할 것(Additional 10% Tariff, above any additional Tariffs)”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약 문제의 근원인 '펜타닐'은 멕시코의 갱단 등이 중국에서 가지고 온 원료로 만들어 미국으로 유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때 모든 나라에 10~20% 보편관세 부과와 함께, 중국과 멕시코에 각각 60%, 200%의 관세 부과를 공약한 바 있다.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이날 ‘관세 폭탄’ 발표가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 재협상과 연관된 포석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본인이 직접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없애고 새로 서명한 USMCA를 다시 휴지조각으로 만들며 사실상 무효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당연히 이번 ‘관세 폭탄’발표의 간접적 영향권에 들어 있다. 중국의 대(對)미국 수출이 감소하게 되면 한국산 중간재 수요도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에 진출해 있는 자동차·가전 등 우리 기업들의 대(對)미국 수출품도 자연스럽게 관세 부과 대상이 되는 탓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대목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멕시코·캐나다에까지 관세 위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對)미국 무역흑자 8위인 우리나라도 도널드 트럼프의 공세에서 예외가 아닐 것이라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Protectionism) 행보는 대외 개방도가 높은 우리나라엔 큰 리스크임에는 분명하다. 한·미 FTA 해체는 그 자체로서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적잖은 무역흑자를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엔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 제품에 비하여 가격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비교우위가 사라지거나 약해지면 한국의 대(對)미국 수출은 큰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무관세 효과에 따른 ‘니어쇼어링(Nearshoring │ 인접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 혜택을 기대하고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한국 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에는 연간 40만 대 생산이 가능한 기아 공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와 각 협력업체의 생산기지가 있다. K4, 리오 등 소형 세단 위주로 완성차를 만들고 있는 기아만 해도 올해 10월까지 멕시코 현지에서 생산·판매된 19만 7,671대 중 11만 8,779대(60.1%)를 미국으로 수출했다. 멕시코 완성차가 타격을 입으면 부품·소재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에 방위비 증액과 대미 무역수지 흑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온 만큼 한국도 트럼프 2기 관세 정책의 핵심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0월 15일 ‘시카고 경제 클럽’ 대담에서 최근 타결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과 관련해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 │ 현금 제조기)’이라고 부르며 한국이 최근 합의의 9배에 이르는 100억 달러(약 14조 원)를 방위비로 부담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도 있다. 정부는 트럼프의 이번 선언을 결코 엄포용으로 치부하고 간과해선 결단코 안 된다. 총력 대응체제를 갖춰 무슨 일이 있어도 FTA만은 수호해야 한다.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냉정하게 대응 방안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마련해야만 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중국·멕시코에는 실제로 고율 관세 부과를 실행할 가능성은 크겠지만, 나머지 국가들에는 협상 카드로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재무장관과 상무장관에 ‘관세 강경파’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 등을 배제하고, ‘관세 협상파’ 들인 글로벌 투자사인 키스퀘어 그룹의 창립자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와 투자은행인 캔터 피츠제럴드(Cantor Fitzgerald)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한 것이 그런 신호다. 제프리 쇼트(Jeffrey Schott)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11월 26일 한국경제인협회 초청 콘퍼런스에서 “미국의 관세 정책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동차·반도체·방산·조선 분야에서 한미 협력 안건을 제안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듯이 우리가 강점을 가진 자동차·반도체·방산·조선 등 분야의 협력을 지렛대 삼아 다가올 통상 고(高)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정부는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