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원·달러 환율 정상화에는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아직 국내 정치를 둘러싼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강(强)달러 기조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한국의 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 선을 밑돌 수 있다는 우려까지도 나오고 있어서다. 더구나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탄핵정국 불안감이 커지며 원화값 변동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어, 환율 방어에는 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될 전망이다.
지난 12월 14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오전 2시 종가 기준 1,435.2원이다. 전날 오후 3시 30분 주간거래 종가였던 1,433원보다 2.2원 올랐다. 12월 둘째 주(8~14일) 달러·원 환율은 1,426원에 출발해 9.2원이 오른 1,435.2원으로 마감했다. 주요 6개국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가 106포인트 후반대로 상승하면서 달러 강세가 이어진 한 주였다. 지난 12월 3일 1,402.9원에 마감했던 원·달러 환율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영향에 급등했다. 지난 12월 7일 탄핵소추안 의결이 무산된 직후인 지난 12월 9일엔 1,437.0원까지 치솟으며 레고랜드 사태 당시인 2022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1,400원을 웃돈 것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발(發)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때뿐이다.
외환시장에선 이날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불확실성’을 일부 해소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아직 탄핵 정국이 끝나지 않은 데다 기본적으로 최근의 원·달러 환율 상승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기인한 강달러 현상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고환율 기조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환율이 치솟으면 물가에 대한 전망은 불확실해진다. 통상 원·달러 환율 오름세는 원재료 수입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시차를 두고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문제는 이날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해 정치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지만, 환율이 내년 상반기까지 1,400원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2017년 3월에도 환율은 전일보다 0.7원 하락하며 영향이 제한됐다. 더구나 환율이 1,400원 초반대에서 안정되더라도 미국 예외주의 지속과 트럼프 집권 2기 행정부의 무역분쟁 등이 미 달러 강세를 유도할 공산이 크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은 환율 등 금융안정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12월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53억 9,000만 달러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300억 달러가 줄었고 올해 들어서만 47억 6,000만 달러 줄었다. 올해 부쩍 커진 달러당 원화값 하락을 방어하는데 76억 달러 넘는 국가 ‘외화 비상금’이 투입됐다. 외환보유액이 급감하는 가운데 재정 건전성과 경상수지마저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며 국가신인도를 떠받치는 3대 축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최근 정국 불안감이 계속되며 원화값 변동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어, 환율 방어에는 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원화값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투입된 자금이 무려 76억 1,000만 달러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외화 비상금이 빠르게 줄어든 탓이 크다. 외자 운용액 등이 더해지면서 환율 방어에 투입된 자금보다 외환보유액 감소 폭은 줄었지만, 외화 비상금이 줄어드는 속도가 부쩍 빨라졌다. 문제는 하반기 이후 원화값 낙폭이 부쩍 커졌다는 점이다. 올해 원화값 방어에 투입된 자금이 역대 최대로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이유다. 외환보유액이 줄면서 나라 곳간마저 빠르게 부실해지고 있다. 이날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국가 재정을 판단하는 척도의 하나로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과 공적자금 상환원금을 차감한 값) 적자는 올해 91조 5,000억 원으로 지난해 87조 원 적자에 비교해 더 악화할 것으로 관측됐다.
특히 국내 경제를 나 홀로 떠받치는 경상수지도 불안하다. 지난 12월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4년 11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563억 5,000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최근 14개월 새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무엇보다도 내년 1월 20일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경기 주축인 수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25일 정부의 경제정책 싱크 탱크 중 하나인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내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10~20%의 보편적 관세가 실제 부과로 이행되면 한국의 대(對)미국 수출이 8.4∼14.0%(약 55억∼93억 달러) 줄어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환율 관리와 외환시장 유동성 확보를 위해 외환시장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정부는 올해 안으로 외환시장 개선방안을 마련할 방침이지만 서둘러야만 한다. 정부는 4년 9개월 만에 은행 외환 선물환포지션 확대를 검토하고,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 Liquidity Coverage Ratio) 규제 완화 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환율이 급등하면서 은행들이 외화 LCR을 규제 기준보다 2배 이상 확대 유지 중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의 외화 LCR 확대가 오히려 외환시장 안정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은행권의 높은 외화 자산 보유로 인해 공급이 정체되고, 이로 인해 원화가 평가절하되는 등 외환시장의 불안을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둘러 외환시장 개선방안을 마련해 시행해야만 한다. 더불어 ‘여·야·정 비상경제 점검회의’ 구성을 통해 정치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